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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담

국문학과의 한탄

아무래도 생각이 없었다.

중, 고등 시절 책 좀 읽고 글깨나 쓴다는 주변 소리에 국문과로 진학했다.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일기장에 내 표현을 보고 칭찬해준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주변 또래보다 잘 쓰거나 언어에 민감했을 수도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처음으로 300페이지에 달하는 청소년 문학을 완독하고 성취감에 젖었다.

그 뒤로 문학 서적을 막 읽었다.

처음으로 꾸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교보문고에 가서 내 돈으로 무언갈 사는 구매 행위도 해보았다.

모든 게 글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교실 게시판에 독후감을 게시했다.

독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 중 고정 독자가 한 분 계셨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선생님 한 분이 글의 질을 상승시켰다.

독자가 있다는 건 그만큼 큰 힘이 된다.

 

그때만 해도 '희망 직업란'에 '작가'를 당당히 써넣을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 1학년 때는 도서관에 참 자주 갔다.

책을 보다가 졸기도 하고. 그런 게 꼭 작가가 되는 건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하는 자양분이 된다고 믿었다.

 

전역 후에 점점 책 보다는 영상물 위주로 보고 리뷰들을 혼자 작성했다.

질은 거의 혼자보는 수준에 머무른 게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과제로 영화 분석을 한 적도 있어서 그런 점에서는 도움이 되곤 했다.

내가 학생시절에 수능 공부를 멀리하고 읽었던 책들이 과제 작성에는 유용했다.

 

학교를 착실히 다니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아니 사실 학교를 대충 다닌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라는 전혀 다른 길에 도달했다.

준비해온 것 없이 학교를 다닌 인문대 학생에게는 참 무서운 것이다.

전공 관련 취업 문은 '바늘 구멍'이라고들 말하는 데 그것보다 더 작은 듯하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속에서 

개인은 환경에 짓눌려서 고통받는다. 

라는 게 내가 공부한 거였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막상 이런 말을 하거나 공감을 얻으려고 하면

그게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그토록 싫어하는 '꼰대'가 되어버리고 만다.

노력하지 않은 개인은 결국 자기 자신에 의해 처벌받는다.

 

착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 선생님은 없을 것이다.

겉으로는 그랬다. 속은 텅 비어서 별 거 없는데도.

300페이지가량의 책들은 방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잔뜩 취해서는 뭔가 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제 그 시간들에 대한 형벌을 받을 차롄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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