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21) 썸네일형 리스트형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정해진 운명이더라도 (스포 有) 곧잘 하는 생각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물론 어떤 행동을 취하지도 변화시킬 용기도 없다. 우크라이나에 금지된 폭격이 가해지고 누군가 매일 죽는다는 뉴스가 나와도 우리는 저녁밥을 먹을 뿐이다.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남자 주인공 복귀주는 그런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닫고 과거의 시간에 갇혀버린 인물이다. '행복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지만 그곳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을 혐오한다. 죽어버린 개를 살릴 수도 사고 현장에서 순직한 동료 소방관을 도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색깔을 가진 사람. 도다해. 그녀가 나타난다. 사채업자에게 빚을 져 사기로 인생을 살아가던 도다해의 새로운 사냥감. 복귀주 집은 .. 장송의 프리렌 - (추천 애니메이션) 마왕을 토벌하고 난 뒤. 인간이고 드워프인 동료들이 늙어 죽어간다. 그리고 남겨진 몇 백년은 우스운 만 년을 사는 엘프의 이야기. '장송'이라는 제목처럼 용사 '힘멜'을 떠나 보낸 뒤의 슬픔 같은 것들을 다루는 힐링물인줄 알았다. 아니라는 건 아니다. 다만 부드럽고 유려한 그림체에 화려한 액션까지 가미된 애니메이션이라는 거다. 주인공의 강자다운 면모,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그야말로 '츤데레'인 프리렌도 매력적이다. 처음에는 남겨진 자들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보다보니 이건 힘멜과 프리렌의 사랑에 대한 얘기.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다만 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감정에 크게 동요하지 않던 엘프인 프리렌이 사랑을 깨닫게 되리라. 만 년 중에 고작 10년 밖에 안되는 모험이었던.. The final season 후편 - 2만 년 후에는 일어나지 말길.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만화책의 결말을 알았을 때도 격하게 옹호했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거대한 서사가 끝이 나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으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교양으로 '애니메이션과 현대사회'라는 강의를 들었다. 수업 중에 1화를 같이 보았는데 과히 충격적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싫어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찾아서 본 적도 없었다. 피가 낭자하게 흩날리는 첫 화를 보고 끔찍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매 해 조금씩 나오는 시즌들을 챙겨봤다. 장차 7년이 흘렀고 드디어 '파이널의 파이널'이 막을 내렸다. 액션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이 반감 가졌던 엘렌의 '자유'에 대한 부분도 수정한 듯했다. 마치 엘렌이 자기가 파라디 섬에 사는 친구들을 위해 8할의 전인류를 죽였다고 오도할 수 있는 부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와요 (스포없음 추천드라마!) 나는 내가 아프다는 걸 약 15년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버스를 타고 갈 때, 설거지를 할 때 불쑥 눈물이 났다. 목소리가 크고 씩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자주 요동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물밀듯이 들이치는 파도를 만나고 나서야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다. 예전부터 죽 쌓여온 것인지. 최근 상황과 일들로 우울감이 온 것인지는 정확히 진단 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괜찮다고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보살피지 않았다는 거였다. 상처를 인정하고 인생을 반추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속의 내가 채 여덟 살이 되지도 못했는데 손을 멈추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도 자기 자서전을 써보라는 얘기를 한다. 마음에는 청진기를 댈 수가 없다. 진단지를 통하더라도 진실하겠다는 개인의 의지 없이는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상처의 문을 닫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구조가 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일로부터 어머니를 잃은 마히토가 치유받는 과정의 서사기 때문이다.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을 '엄마'로 받아들이기까지의 여정이 탑 안에서 일어난다. 탑이 무너지고 일본의 전쟁은 끝이 나고 가족은 저택을 떠난다. 마치 '스즈메'가 재난으로부터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문을 봉인해 버리듯 말이다. 마히토 역시 탑 안에서 히미를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며 상처의 면면들을 돌아보게 된다. 잠결에서 본 엄마는 불에 고통받으며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아래' 세계의 히미는 오히려 불을 마법처럼 사용하는 강한 소녀다. 펠리컨과 앵무새들은 히미가 나타.. 헤어질 결심 - 간단리뷰 처음 봤을 때는 잔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좀 달랐다. 해준은 서래를 서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다. 서래 역시 다리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남자 형사를 꾀어내고 있었다. 영화는 고요하지만 도발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어떤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살인사건'까지 저지르는 얘기가 과연 반전이 없어서 심심한 얘기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곰곰이 곱씹을 수록 무서우리만치 집착적이고 큰 사건이었다. 다만 얘기하는 방식이 종일 낮은 소리를 내듯 조용했기에 눈치채지 못했다. 깨끗하고 정의롭다고 여겼던 해준이라는 형사가 여자의 집을 훔쳐보듯 살핀다. 우리는 흔히 이런 모습을 보면 스토커 같다든가 변태 같다고 말하곤 한다. 해준은 그만큼 서래에게 빠졌다. 심지어는 그녀를 지척에 두는.. 눈이 부시게 - 슬픈 청춘 예찬 *** 이 글은 결말까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처럼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딸.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려고 시계의 시간을 수 천 번 되돌린 반작용으로 늙어버리고 만다. 가족들만 아는 얘기를 꺼내니 쉽게 믿어준다. 친구들 역시도 '혜자'를 그다지 의심하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인다. 그중에 '이준하'에게만은 정체를 공개하지 않는다. 할머니인 모습이 되고 나서도 잊지 못하고 접촉하지만 저세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닿을 수가 없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혜자는 할머니가 된 게 아니라. 진짜 할머니이고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이라고 불렀던 이들은 며느리와 아들이고 친구들은 늙은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똑같은 할머니다. 드라마는 액자식 구성으로 알.. 마더 - 바보를 낳은 여자 *** 이 글은 결말까지 모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극 중 이름조차 '엄니', '어머니', '엄마'일뿐인 여자가 갈대밭에서 웃는 듯 우는 듯 춤을 추며 시작한다. 엄마는 작두질을 하고 아들은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개와 장난질을 한다. 칼질하는 손은 보지도 않고 도준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서 오는 불안과 차에 치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플롯이 처음부터 불안감을 더한다. 제 손에서 나는 피인지도 모르고 도준 걱정뿐인 엄마는 전형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지극한 사랑으로만 보여주고 있지 않다. 어딘가 뒤틀리고 꼬인, 사랑 앞에 함부로 붙기 어려운 수사들을 떠오르게 한다. 진태가 도준에게 너 여자랑 자본 적은 있냐,라고 묻자. 도준은 "나 있어..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