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영화

마더 - 바보를 낳은 여자

*** 이 글은 결말까지 모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극 중 이름조차 '엄니', '어머니', '엄마'일뿐인 여자가 갈대밭에서 웃는 듯 우는 듯 춤을 추며 시작한다. 엄마는 작두질을 하고 아들은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개와 장난질을 한다. 칼질하는 손은 보지도 않고 도준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서 오는 불안과 차에 치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플롯이 처음부터 불안감을 더한다. 제 손에서 나는 피인지도 모르고 도준 걱정뿐인 엄마는 전형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러나 영화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지극한 사랑으로만 보여주고 있지 않다. 어딘가 뒤틀리고 꼬인, 사랑 앞에 함부로 붙기 어려운 수사들을 떠오르게 한다. 진태가 도준에게 너 여자랑 자본 적은 있냐,라고 묻자. 도준은 "나 있어, 엄마랑."라고 답한다. 극 중에서 엄마와 잔다는 말은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아들이 엄마의 가슴을 주무르며 자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계속해서 단순한 잠이 아닌 성관계를 연상케 하는 이 '잠'은 중의적으로 쓰인다. 쓸 데도 없는 아들의 정력을 위해 보약을 먹이는 것이나 과할만치 흐르는 오줌을 가리려는 것까지. 연인들의 잠 따위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깊이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다.

 도준의 죄를 벗기기 위해 엄마는 '태생부터 글러먹고', 자기 아들과는 '종자부터 다른' 진태를 의심한다. 누가 봐도 동네 양이치인 진태가 자기 아들과 어울려 다니며 덮어 씌웠다고 생각한다. 진태 집에 잠입하여 골프채에 빨간 자국이 묻은 것을 보고 이것을 고발하지만 그것은 술집 딸의 립스틱 자국이었다. 엄마는 결국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에게 자기 아들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도 이런 말을 한다. "내 아들이랑은 다른 쓰레기 같은 놈들." 

 엄마가 아들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물론 당연하게도 아들이 지적장애이거나 그와 비슷한 칠칠치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눈을 떼면 사고를 칠지도 모르니 말이다. 바로 그 씨가 어디서 왔을까. 도망갔는지 사별했는지 없어진 남편과 자기에게서 왔다. 장애아 혹은 바보를 낳아버린 자신. 아들에게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두 배로 갚아주라고 가르친다. 도준이 다섯 살 때 박카스에 농약을 타서 죽어버리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지란 아들놈과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아를 특히 지적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TV 다큐 프로그램'에 나와서 늘 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하루만 더 살다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누구나 모성애나 부성애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은 분명 자식을 사랑할 것이다. 자식보다 먼저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그러나 자식이 침을 질질 흘린다거나 공공장소에서 괴성을 지른다거나 하는 추태를 매일 같이 벌인다면 어떨까. 때로는 창피함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사과하며 수치심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여기서 아들의 오줌자국을 신발로 쓸어버리려는 것, 다섯 살 때 농약을 타 둘 다 죽어버리려 한 심정이 이해가 된다. 면회실에서 왜 자기에게 먼저 박카스를 줬냐고 묻는 아들에게 엄마는 "그래야, 나도 다음에 먹고 죽지."라고 말한다. 하루라도 더, 1분이라도 더 늦게 죽길 바라는 엄마다. 

 영화의 시작부터 '광인'처럼 보이도록 갈대밭에서 춤을 추는 것이나. 허벅지에 침을 놓은 채 관광버스에서 몸을 흔드는 모습이나. 엄마는 이유 모를 수치심과 창피함으로 뒤덮여 있다. '바보'를 낳았다는 자책감. 도준에게 바보라고 하는 것은 곧 엄마에게 바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모욕이다. 도준이 하는 모든 실수 또한 그렇다. 그 모든 모멸 속에서 엄마는 "종자부터 다른."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아들이 아니라 그 종자의 시작인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른 '더 우월한'자라는 착각 혹은 믿음 없이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한 모성애, 희생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 큰 아들과 한 방에서 잠을 자며 놀림받아야 하는. 결국 자신으로부터 나온 한 몸인 자식에 대한 모욕은 모두 자기에 대한 것과 같다. 엄마가 죽인 것은 아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의 추태와 실수에 대한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도준이 버스에 타기 전 침통을 주자 엄마는 딱 두 번 있는 엄청난 비명과 경악을 보여준다. 도준이 박카스 일을 기억하는 했을 때와 침통을 가져왔을 때다.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자기가 버티기 힘들어서 했던 한 번의 살인미수와 한 번의 살인. 침통을 건네받는 장면은 아들로부터 투사 됐던 수치가 온전히 자기에서부터 느껴지는 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