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구강모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한 악귀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죽는 것으로 시작 된다. 바로 다음 '최악의 보이스피싱범'이라는 뉴스 화면을 보는 구산영 (김태리)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귀신보다 무서운게 사람이라는 말이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를 구했을 때 구산영이 한 번. 서문춘 (김원해)이 할머니가 죽은 곳에서 두 번 나온다. 처음에 구강모가 악귀에게 속아 문을 열어 주는 것이 마치 '보이스피싱범'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장면이 바로 '보이스피싱범'이 나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요즘 문제가 되는 전세 사기 같은 것은 대형으로 일어나지만 보이스피싱은 딱히 대형이란 말을 못 본 거 같기도 하다. 하필 구산영이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전재산을 잃고 자살을 생각하는 것과 구강모가 죽은 사건이 연이어 나오는 것은 귀신보다도 더 한 인간들을 조명하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
2화까지 배경이 되는 장소는 구산영의 집을 비롯해서 대부분 서울, 소위 말하는 수도권의 변두리이자 달동네에서 이루어진다.
"저런 데서 겪는 불행은 행복한 불행이 아닐까."
구산영의 친구가 한 말이다. 돈 없는 거도 서러운데 귀신이 나오는 집에 살거나. 끔찍한 범행이 있었던 터에 살아야 하는 자기 현실이 더 끔찍해 한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기에도 버거운 자기 삶 앞에서 미안한 마음도 넣어두고 산영 앞에서 한풀이를 했다.
구산영은 불안증세를 앓는 어머니와 살며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대리운전까지 뛰는 가난한 열혈 20대다.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뒤 악귀에게 씌어 인형을 칼로 긁으며 하는 말은 영 없는 말은 아니었다. 부자인 동창 결혼식에 갔다가 식사 자리에서 열등감에 먼저 나온 것도 말이다.
이홍새는 그런 구산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식사자리에서 신부에게 거북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는 나와버린다. 홍새는 산영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으며 자기 삶을 바꾸어 보려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선배인 서문춘이 자꾸 해결할 수 없는 미제 사건에 목매는 게 마음에 안든다. 때문에 자살 사건을 모아 온 선배에게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말을 하며 자살이 대수냐는 듯이 맞받아 친다.
서문춘은 염해상 앞에서는 자신은 '범인(인간)을 잡는 게 일이지 비과학적인 것을 좇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첫 사건을 기억하고 있고 그와 같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추적하는 인물이다. 서문춘은 염해상에게
"과학이 발전하고 CCTV가 많아" 검거율이 거의 100%에 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살'이 아닐까.
왜 하필 작가는 악귀가 사람을 죽이는 방식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렸을까. 극 중에서 구산영이 자살을 하려 할 때였나 이런 말이 나온다.ㅡ 자살을 하는 건 단순히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악귀 같은 손들에 떠밀려서 그런 거라고. 대충 이런 뉘앙스의 말이 나온다. ㅡ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대한민국. 거기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무수히 많다. 그 중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다. 물론 해결하는 건 쉽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은 청년들이 시민들이 희망을 잃고 죽어가는 '사건'들은 미제처럼 해결 될 기미도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작용들 때문에 다리 위에 섰는지. 올라서기도 힘든 대들보에 목을 매야 했는지.
<악귀>가 단순히 귀신을 쫓아 원한을 풀어주는 얘기는 아닐 거라는 복선은 이미 다 나온 것 같다. <시그널>에서 마지막에 미제 사건에 대한 어떤 대사가 있었다. 누군가는 계속 쫓아서 해결해 나가야 이 사회가 굴러가는 데 도움을 주듯.
아무도 믿지 않는 귀신에 대한 추적도 위기의 대한민국에 대한 김은희 작가의 문제의식과 시선이 아닐까 기대한다.
+ 거울을 잘 보라는 것. 달라진 자기 모습이 보일 거다.
악귀에 씌이다 : 약한 마음, 악한 마음을 가진 자기자신. 엄마랑 그저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진 구산영이 전재산을 잃고 힘들어 함. 자살을 생각함.
굳세게 살아가는 마음이 꺾임. 친구의 말처럼 좋은 아파트에서 불행을 겪고 싶음. 부잣집 딸이 우는 게 짜증남. 화가 남. 세상이 싫음. 불공평함.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마음들에 지거나 잡아 먹혀서는 안 됨. : 거울을 보고 자기자신을 다스리고 늘 잘 보살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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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마지막에 무당처럼 보이는 여성이 여자 아이들을 모아두고 고른다. 붉은 댕기를 손에 들고 말이다. 다음 장면에서는 개에게 먹이를 주듯 부르고는 칼로 찔러서 아이를 죽인다. 붉은 댕기에는 피가 튄다.
아이들은 팔려 왔거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하층민 집 딸들로 보인다. 설령 그런 짓을 당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소녀들. 붉은 댕기는 댕기머리를 할 일이 있는 집 자제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여기에 섥힌 얘기도 역시 신분과 권력에 대한 어떤 분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고로 염해상의 어머니는 부잣집 딸이 아니어서 시어머니에게 핍박 받는 시집살이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의 죽음에 매정하게 "죽었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가 일반적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가난한 자들이 오히려 스스로 죽음까지 이르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염해상의 엄마는 죽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남편이 죽길 바랐거나 그래서 커져버린 악귀가 욕망을 품은 악귀가 씌인 사람도 잡아먹어버린 것인지. 그렇다면 구강모와 구산영의 할머니가 죽은 것은 또 왜 그런가. 여기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앞으로 이런 떡밥들을 잘 풀어낸다면 올해 SBS 연기대상은 <악귀>에 나오는 출연진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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