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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담/메모

메모 -2 진격의 거인 파이널 (전)

 파이널의 파이널 전편이 3월 4일에 공개 됐더라. 웨이브 플랫폼을 통해서 보았다. 결말에 관한 글을 예전에 조금 썼을 때도 말했지만. 나는 에렌의 행동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 에렌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건 그냥 애니메이션이고. 애니메이션에 담긴 생각을 작가가 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고? <진격의 거인>은 실존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 작가의 세계기 때문이다.

 

 했던 얘기는 그만두고 새로이 느낀 게 있다. <진격의 거인>에는 에렌과 라이너가 서로 닮은 주인공이라는 작가의 말과 설정이 있다. 라이너는 벽 안 인류를 1/3 전멸시키고 그 뒤로도 월로제까지도 위태롭게 한 장본인이자 재앙이다. 아마 거기서 그들이 더 과격하게 베르톨트를 비롯한 거인의 힘을 사용했다면 벽 안 인류는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그들의 존재는 벽 안 인류의 존망을 결정지을 만큼 커다란 힘이었다. 

 그리고 지금. 에렌은 반대로 세계를 상대로 인류의 존망을 결정 지을 땅울림을 시작했다. 여기서 에렌은 사람들이 자주 비난하는 2/3의 인류를 무참히 살해하게 된다. 도덕시간에 배우는 것 중에 그런 게 있다. 10원을 훔쳐도 도둑질은 도둑질이다. 같은 얘기. 

 

 시조의 거인이 된 에렌이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얘기를 보며 '트롤리 딜레마'가 떠올랐다. 그게 꼭 라이너와 에렌의 얘기 같았다.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서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기차로 죽게 놔둬도 되는가 하는 그 유명한 딜레마. 대부분의 사람은 다섯 명보다 한 명이 죽는 게 낫다고 결정한다. 여기서 만약에 기차가 다섯이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한 명이 죽는 쪽으로 돌리려면 기차 위로 한 사람을 밀어서 바꾸어야 한다면?이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망설인다. 

 에렌은 바로 그 망설임을 주저하지 않는 자다. 미카사와 아르민의 동료들은 제 손으로 그렇게 하기는 싫은 자들이고. 

 

 벽 안의 인류는 분명히 절대적 수로 봤을 때, 벽 바깥 인류에 비해 적다. 그러니 그들이 당한 존망의 위기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인가? 지금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옆집 사람을 가짜 밀고하고 결국 아무도 남지 않는다면. 나치는 결국 그를 찾아낼 것이다. 

 인류의 희망인 비행선 폭격이 실패하자 사령관은 말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어른들이 문제를 외면하고 섬을 돌린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마레는 세계를 상대로 거인의 힘을 이용하며 잔인한 짓을 벌인 문제를 파라디 섬으로 돌려 해결하려 했다. 그리고 그 증오가 되돌아온 것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함을 잊은 것이다. 

 그 과오 때문에 라이너 같은 괴물이 태어났다. 그리고 괴물에게 맞서기 위해 에렌이 괴물이 되었다. 서로의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던 존재들. 라이너와 에렌. 그래서 그 둘을 닮은 주인공이라고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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