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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으로 그러나 깊게 건네는 정영욱의 위로

 이 책을 알게 된 건 작가의 플레이리스트를 올리는 '유튜브' 때문이었다. 그곳의 설명란에는 작가가 본인의 책에서 발췌한 글귀들을 담아 두었다. 와닿고 참 글이 예뻤다. 한때 이병률의 책을 필사 했던 때처럼 끌리는 문체였다. 그러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작가의 책들을 읽어 보았다.

 20대를 다 지나가는 나이인 지금의 나. 이 정도 세월은 많이도 아니고 적게도 아닌 애매한 삶의 기간이다. 이제는 어느정도의 삶에 대한 얘기들은 다 뻔해 보인다. 근데 뻔한데도 그 글들을 애써서 찾아내고 싶은 때가 있다. 어떤 일로부터 상처 받았을 때. 그것을 어루만지는 섬세한 문장이 엄마손처럼 쓰다듬어 준다.  

 작가가 60세 70세 세월을 다 살아 낸.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영감이었다면 이 책은 오히려 힘이 없었을 거 같다. 나약한 인간들을 위로해야 하니까. 다 지난 자의 조언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자의 생생한 아픔. 거기서 나오는 아직 다 낫지 않은 아픈 말들. 그게 정영욱의 글에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 알고 어쩌면 겪어 본 말들을 다시 읽었을 때. 이 책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갈수 밖에 없었다. 

 

관계에는 서로 잡고 있는 끈이 있다. 별일 없는 관계에선 그 끈이 끊어질 생각 없이 느슨하게 이어져 있지만, 곧 멀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선 그 끈을 서로 당기고 있듯 팽팽하게 펴진다. (중략) 그렇게 수없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관계의 굳은살이 생길 때쯤, 놓아 버리는 선택을 배우게 된다. 결국, 더 세게 쥐고 있는 쪽이 그 관계를 끝낼 때를 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생략)  
p75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결정적 페이지였다. 몰랐던 인생의 경험은 아니었다. 다만 그게 그때 내 상황에 잘 맞물렸다. 대단한 학식을 가진 책만이 누군가를 위로하는 건 아니다. 그게 꼭 좋은 책도 아니다. p83에도 「벼랑 끝에 선 관계」, p84, p85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얘기들. 그게 작가의 말이 유난히 깊게 아픈 이유다. 해답을 구하는 입장에서 듣는 유튜브의 관계에 대한 처세가 아니라 그 뒤에 남겨진 꼬질한 우리들의 얘기. 바로 그 지점을 계속해서 말하기에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다. 경험 해 본자들은 글의 흐름을 따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른다. 

 

 회피형이고 불안형인 그러나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의 가장 첫 이야기는 「마음의 창」이다. 일종의 서문인 셈이다. 거기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자신을 숨기며 모두가 당신을 외면한다는 상상 속의 마음에 너무 오래 머물지만 마셔라.
                               마음의 창은 빈틈없이 닫아도 투명한 유리임을, 잊지마셔라.

 

 

 언제, 어디서 상처 받았는지. 기질적인 것인지. 무엇 때문에 자기가 이토록 나약한 인간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과 섞이면 늘 재미가 없어서 혼자 너무 진지해져버려 섬처럼 떨어진 사람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게 민폐라는 생각에 나는 '원래' 혼자가 좋아라고 최면을 거는 사람들. 그런데 누구보다 사람이 그립고 고픈 또 좋아하는 사람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이 질색하게도 싫은 사람이었다. 그 말을 가려들을 수 있는 지금. 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잘 만날 자신이 있다. 창을 닫고 들어가 있어도 된다. 다만, 꼭 다만 그 문을 유리로 만들어야 한다. 바깥에도 비,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다들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찬찬히 비옷을 장화를 신고 나가자.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