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렌 예거(이하 에렌)가 결국 인류를 학살한 이유는 뭘까.
1.1 에렌은 시조 유미르의 힘을 얻어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과거부터 미래까지를 알게 된 에렌은 타이버 가문에 의해 파괴되는 파라디 섬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파라디섬의 엘디아인들이 마레의 엘디아인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힘을 합쳐 파라디 섬만 남는 결말이거나
원래 지크가 하려고 했던 엘디아인이 세계에서 종말 하는 계획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지만 이분법으로 얼룩진 세력이 힘을 합치면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는 정답이 있다.
물론 그게 쉬워 보이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 앞에서 개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청년들은 좌절하기 마련이다.
1.2 결말을 보면 에렌은 세계와 파라디 중에서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
한 쪽을 완전히 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라디섬에 남은 엘디아인들은 세계에 대항 준비를 한다.
예거파에 서지 않았던 온건파인 아르민과 동료들은 파라디 섬으로 가서 자신들이 본 것을 얘기하려 한다.
문명의 대부분이 파괴된 인류는 기생충 같은 거인의 힘에서 벗어나 어쩌면 동등한 입장으로 돌아간 듯하다.
1.3 작가는 라이너가 에렌과 같은 입장에 선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라이너는 파라디섬에 '악마'들이 산다고 생각하고 시조를 취하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후에 사실을 알게 된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조사병단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아가 흔들린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생인 아이가 살해를 한 이유가 거짓이었고 자신의 세계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는 것일 테다.
에렌이 마레에서 라이너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라이너는 망연자실한 상태였고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
그 감정을 에렌 역시 바다 너머 마레에 왔을 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에렌과 라이너가 처한 입장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타이버 가문이라는, 어떻게 보면 엘디아의 배신자가 파라디 섬을 '악마'로 규정해서 에렌의 고향을 파괴하려 한다는 점.
반면 라이너는 거인의 힘을 포기하고 삶을 등지더라도 자신의 가족이나 아끼는 사람들의 터전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레는 여전히 강력한 거인 군사를 지니고 있고 세계의 적은 엘디아인이기 때문이다.
1.4 그렇다면 에렌은 왜 모든 굴레를 끝낼 수 있는 '땅울림'을 끝까지 진행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에렌은 작중 후반에 자유를 중요시 여기며 시조의 힘으로 7대 거인의 힘을 빼앗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막으려는 자들의 뜻도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나의 의지도 모두 자유라는 것이다.
이런 자유에 대한 강박은 노예로 살아 왔던 유미르를 해방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얼떨결에 얻게 된 거인의 힘으로 한 생애도 아닌 2천 년 동안 노예로 지낸 유미르를 위해서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굴레의 근원은 유미르에게 기생한 '거인의 힘'인 지네 형상을 한 기생충이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지네 형상을 한 '기생충'은 노예인 유미르를 숙주로 삼았다.
노예로서의 삶 밖에 모르는 유미르는 죽음조차 노예스럽게 주인을 위해서였다.
죽은 다음에도 자식들에게 먹혀져 좌표에서 머물며 프리츠 가문의 노예로 머물게 된다.
2천 년의 세월 동안 유미르가 기다린 건 단지 미카사와 에렌의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삶과 다르게 사랑하지만 조사병단과 온건파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에렌의 목을 치는 미카사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일까.
'유미르'라는 인물은 설정 자체가 노예이기 때문에 좌표에 갇힌 것인데 자기 의지로 그들의 사랑을 기다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에렌이 진정한 '진격의 거인'이고 '자유의 화신'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자유를 위해서라면 절대로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결연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린게 아닐까 싶다.
작중에서 '거인의 힘' 그 자체로 보여지는 지네 형상의 '그것'은 에렌에게 다시 붙기 위해 엘디아인들을 노예처럼 거인화 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나약한 인간의 마음과 동시에 모든 것을 취하고 싶어하는 무한한 욕망을 이용해 기생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엄청난 의지로 땅울림을 발동시킨 에렌에게 다시 붙으려 했지만 모두의 자유를 추구하는 에렌의 뜻대로 7대 거인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 것이다.
2.1 이후에 드러나지만
에렌은 무지성거인이 된 다이애나 프리츠를 조종해서 자신의 어머니를 먹히게 만들고 어린 에렌에게 거인에 대한 증오감을 심어준다.
시조의 힘을 얻은 에렌이 베르톨트가 먹힐 상황을 바꾼 것이다.
에렌은 정해진 미래를 따라서 역할을 수행한 게 아니다. 가장 나은 세계를 위해서 그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자신의 기억을 지운 것이다.
에렌은 좌표의 공간에서 아르민과 만나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퍼질러져 미카사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게 싫다고 말한다. 에렌은 그처럼 일반적인 인간과 같은 어린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는 파라디 섬이 처할 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길을 통해 미래를 본 에렌은 자신에게 지옥과 같은 삶을 주고 거인에 대한 증오심을 생기게 해 강인하게 자라게 만든다. 일반적인 마음가짐으로는 기나긴 노예의 삶을 청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에렌은 유미르 해방과 더불어 13년의 저주이며 모든 만악의 근원인 거인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며 이 모든 것이 '자유'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자유는 조사병단이 만들어진 이유다.
에렌은 누구의 자유도 무너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인류 대학살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파라디와 반대에 선 대부분의 인류가 더 강한 힘과 수적 우세를 가진다면 파라디 섬은 결국 파괴 될 것이다.
아르민과 지크의 대화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그런 즐거움이 생기는 곳은 바로 고향이고 터전이다.
에렌은 아끼는 이들의 학살을 막고자 하는 '자유'를 위한 조사병단의 의지도 지키고
파라디 섬도 남게 되는 결말을 그린다.
파라디 섬만 남았다 한들 인간들은 어차피 계속해서 싸운다. 그게 인류가 살아온 역사다.
에렌은 평화로웠던 파라디 섬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4. "살육자가 되어 주어서 고마워."
아르민은 에렌에게 살육자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며, 네게 한 과오가 헛되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일본의 제국주의로 해석하거나 에렌의 대학살 미화로 여긴다.
단순히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제국주의를 끌어다 붙이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또 아르민이 '고맙다'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대학살을 정당화하고 미화했다고,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의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해도 되느냐? 라는 물음이 당연히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에렌은 이 모든 비난을 생각했을 거다. 다만 대륙의 인류가 다시 파라디 섬을 공격한다면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파라디 섬이 평화롭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반대로 문명이 파괴되지 않은 파라디 섬이 더 우세한 힘을 가지지 않았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거인의 힘은 사라졌고 파라디 섬은 마레에 비해 한참 뒤쳐지는 과학 수준이었다. 작중에서도 나오지만 마레는 여전히 엘디아인에게 겨눌 총과 포가 있고 파라디 섬도 기껏해야 그정도 수준이다.
변수라면 입체기동 정도가 있을 텐데 그조차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은 예거파에서 싸우다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온건파는 그렇게 싸울 사람들이 아니다.
4.1 오히려 아르민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친구인 에렌의 죽음은 통탄스럽다.
자신들을 위해서 자기가 추구하는 자유라는 가치를 꺾고 다른이들의 자유를 위해 진격하는 모습을 보고 고맙다고 느낀게 아닐까.
모든 진실을 알고 마지막 순간에 아르민이 에렌에게 고맙다고 한 것은 너의 모든 진의를 "나는 이해한다." 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민은 에렌의 뜻을 설파하려고 가는 것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날 한 시에 모두가 군대를 철수하고 없애면 세계에 전쟁 같은 건 없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사는 한반도가 휴전 중이어서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처럼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행복에 한 발짝 딛는 일이 또 있을까.
물론 지금 생각하면 무기에 얽힌 자본, 전쟁은 하지 않아도 보유한 것만으로 힘이 된다는 사실 등. 왜 강대국이 왜 인간이 그것들을 놓지 않는지 알고 있다.
에렌은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 상상처럼 세계의 군산들을 철수 시켜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진격의 거인에는 '절대 악'이 없다. <진격의 거인>은 <인피니티 워>가 아니다. 여기에는 '빌런 타노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에렌은 완벽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최대 범위 내에서 세계의 평화를 잠깐 이나마 구현해보려 했다.
좌표 속에서 진실을 알려주며 에렌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라고 아르민에게 말한다.
그 말을 내가 왜 '땅울림'으로 80퍼센트에 달하는 인류를 멸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아니다.
온건파나 예거파 어느 쪽도 답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두 쪽의 의지, 그 자유를 모두 존중하며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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