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애니메이션

The final season 후편 - 2만 년 후에는 일어나지 말길.

글을 위한 글 2023. 11. 13. 11:25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만화책의 결말을 알았을 때도 격하게 옹호했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거대한 서사가 끝이 나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으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교양으로 '애니메이션과 현대사회'라는 강의를 들었다. 수업 중에 1화를 같이 보았는데 과히 충격적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싫어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찾아서 본 적도 없었다. 

 피가 낭자하게 흩날리는 첫 화를 보고 끔찍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매 해 조금씩 나오는 시즌들을 챙겨봤다. 장차 7년이 흘렀고 드디어 '파이널의 파이널'이 막을 내렸다. 

 액션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이 반감 가졌던 엘렌의 '자유'에 대한 부분도 수정한 듯했다. 마치 엘렌이 자기가 파라디 섬에 사는 친구들을 위해 8할의 전인류를 죽였다고 오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자유에 대한 노예였다는 대사까지 나온다.

 모든 에르디아인으로 통하는 통하는 '길'. 거기다가 시조 유미르의 막강한 힘. 이 모든 걸 얻었음에도 엘렌은 자유롭지 않다. 길을 알게 된 후로 오직 하나의 미래만을 향해 진격하는 노예가 됐을 뿐이다. 그 무한한 실패의 굴레 속에서 괴로워하는 엘렌을 ㅡ사람들은 왜 모르는 걸까! ㅡ 구원해 주는 사람은 미카사다.

 프리츠 왕을 사랑했던 유미르. 2천 년의 세월 동안 계속해서 거인을 만들어 그 뜻을 대대로 이어왔다. 유미르가 하는 사랑은 엘렌이 하는 사랑과 닮았다. 숭고하고 거룩한 희생이다. 자기를 바쳐서 친구들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엘렌. 프리츠 왕을 향해 던진 창을 대신 맞는 유미르. 하지만 미카사는 다르다. 아끼다 못해 제 몸처럼 여기는 엘렌의 목을 베어버린다. 

 

 주말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강신주 철학자가 떴다. '장자수업'이라는 EBS 강의의 토막을 보았다.  노나라 임금이 바닷새를 잡아서 좋은 것을 다 해주었는 데도 3년이 채 안돼 죽었다는 얘기. 원효가 아들에게 선善을 행하지 말라했다는 얘기. 아들이 그럼 악惡을 행해야 하나요. 묻자 '아껴서 선도 행하지 못하는 어찌 악을 행하랴.'  

 이야기의 골조는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자유와 상대방의 자유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속박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관계. 떠나지 않고 있는 모든 순간이 더 나은 기쁨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날아갔을 테니. 

 

 장, 코니, 리바이 병장. 모두들 지금 당장 엘렌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설령 전인류를 죽였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 땅울림이 끝이 나고 미카사는 길 속에서 엘렌과 만난다. 숲 속 오두막에 숨어 남은 4년을 보내고 싶었던 엘렌의 속마음을 듣게 된다. 그간 미카사의 머리가 지끈거렸던 건 아커만이 가진 특성이 아니었다. 사랑이 뭔지. 그래서 미카사의 선택은 무엇인지 궁금했던 유미르의 수많은 방문이었다. 

 엘렌은 13년이라는 제한된 아홉 거인의 굴레를 부수어 친구들을 오래 살 수 있게 해 준다. 미카사는 지옥의 미래를 무수히 반복해 왔던 엘렌을 유일하게 용서하며 구원한다. 

 본래는 엘렌의 대학살에 아르민이 공감하는 듯한 어조로 얘기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르민과 엘렌이 만나는 대화 장소인 바다가 삽시간에 피로 변한다. 하나의 미래밖에 볼 수 없었던 엘렌이 그렇게 된 이유. 그건 바로 아르민이었다. 바다라는 희망을 품게 해 계속 진격하도록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가 아니냐는 말을 했던 아르민의 대사가 바뀌었다. '우리를 위해서 대학살을 해주어서 고마워.'가 아니라 '너 혼자만이 만든 지옥이 아니라 나도 함께했어. 지옥까지 함께하자.'로 말이다. 

 인간은 당분간 힘이 없어서 전쟁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엘렌이 말했듯 세상은 또다시 싸웠다. 2천 년 후에도. 그리고 2만 년 후에도. 계속 잘못된 역사를 반복했다. 반전주의를 얘기하고자 이야기를 쓴 작가 하지메 이사야마를 비난했던 이들이 많다. 제국주의가 아니냐 대학살 옹호자가 아니냐 하면서 말이다. 거대서사를 보고도 계속해서 분쟁하고 전쟁하려는 우리들을 보라. 엔딩 크레디트가 내려갈 때. 엘렌의 무덤을 배경으로 미사일이 떨어진다. 

 작가는 평화를 소망한 한 소년인 엘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살육을 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 소년의 대서사가 막을 내린다. 2만 년이 넘도록 이 끔찍함을 반복할 것인지. 묻고 있다. 2천 년 혹은 2만 년 후의 너에게 이 편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