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영화

길복순 (넷플릭스 시리즈 스포 有)

글을 위한 글 2023. 4. 4. 21:35

 밤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만 작업이 끝나고 '이마트'를 달려가는 엄마 길복순. 딸 앞에서 만은 살인자가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이고 싶은 여자. 그 모순 덩어리인 삶.

 

 1. 길재영은 엄마가 '암살자'인 것을 몰랐을까.

 극 중에서 길복순은 후배인 한희성의 집에서 섹스를 한다. 이 장면에서 한희성과 길복순의 몸에는 베이고 맞아서 생긴 흉터들이 굵직하게 남아 있다. 아무리 열심히 숨기려고 했다고 해도 딸이 엄마의 등 한 번을 못 봤을까. 

 길재영이 길복순에게 국정원 직원이냐고 물었던 것은 그냥 그렇게 알고 있을게,라는 질문이자 답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날. 길복순은 알고 지내던 암살자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고 딸의 전화를 받다가 휴대폰이 박살 나 연락이 두절된다. 누구라도 걱정할 상황이지만. 길재영은 단순한 교통사고나 그런 일을 생각한 게 아니라 길복순이 밤에 일을 나가면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둬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공포에 떤다. 

 

2. 차민규는 길재영이 자기 딸인 것을 모르는 건가.

 차민규는 길재영이 자기 딸인지 의심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동생인 차민희가 "애 아빠가 누구랬지?" 같은 질문을 할 뿐이다. 거기서 차민규는 질문을 회피하는 듯 그냥 '일반인'이라고 말하는데 '암살자'인 자신을 염두엔 둔 답처럼 보인다. 극 중에서 섹스 장면은 한희성과 길복순이 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관객 누구도 한희성이 아빠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모든 대사와 씬들이 차민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차민규는 왜 마지막에 자신의 딸에게 지옥의 영상을 보낸 것일까.  영화에서 계속해서 말하듯이 그게 지옥이 아니라 오히려 길재영의 피에 맞는 적성을 찾는 천국이기라도 한 걸까. 

 

3. 차민희의 이상할 정도의 집착

 차민규의 동생인 차민희는 첫 등장 장면에서 내연녀처럼 등장한다. 계속해서 길복순을 질투하고 그녀가 오빠와 가까워지지 못하도록 방해까지 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도를 넘어 길복순을 죽이기 위해 주변인물들을 조종하기에 이른다. 단순한 남매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이상한 관계다. 이 설정은 왜 필요한 걸까.

 

4. 길재영은 부모의 길을 따라 간 것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길재영은 학원으로 찾아가 옛 여자친구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너한테 확 키스를 해버릴까, 아니면 죽여버릴까." 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오면서 자기를 협박했던 철우에게는 살벌한 제스처를 날린다.

 극중에서 차민규는 김영지를 죽이면서 "거짓말을 아는 상대에게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가장 잘 이행하는 사람은 길재영이다. 엄마의 모든 비밀을 담은 영상을 봤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엄마를 예전처럼 대한다. <길복순>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킬러인 남자 차민규와 여자 길복순 둘의 피를 이어받은 딸. 그녀가 마지막에 "죽여버릴까."라는 말을 하는 건 단순한 협박처럼 보이지 않는다. 보통 드라마에서 학교를 자퇴한 인물들은 교복을 입지 않고 친구들 앞에 나타난다. 길재영은 학교를 자퇴하고 자기 피를 따라 암살의 길을 걷게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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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연을 위한 액션 영화를 감독이 쓴 것 같다. 딸의 나이가 15세로 설정된 것도. 전도연 배우의 실제 딸 나이와 같은 것도 그 이유일 터이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어쩌면 새로운 변신인 것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평가는 누가 봐도 좋지 않을 것. 빈약한 스토리는 덤일 뿐이다. 

 그나마 나아야 할 액션마저도 시원하게 칼로 죽인다는 것을 제외하면 새로울 것도 볼 맛도 적다. 그냥 한국 영화 치고는 시원하게 잘 찌른다 하는 느낌. 무엇보다 '수'를 고민하는 연출이 길복순의 상상으로 연출되는데. 그게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만 개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똑같이 연출되는 게 <길복순>에 어울리는 연출이었나 싶다. 그 수많은 상상 신을 찍은 '테이크'가 아깝고 시간이 아깝다. 차라리 그 시간에 뻔하더라도 갑자기 시작되는 칼질을 더 정교하고 긴박하게 잘 담아내는 게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모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길재영이 동성애자인 것 등까지 그 모순 안에 잘 담아내지는 못한 거 같다. 할 얘기를 한번에 너무 많이 담은 듯싶다.